'Writings'에 해당되는 글 40건

  1. 2015.01.06 Trends in opera
  2. 2014.02.01 1월을 보내고
  3. 2014.01.13 Resolutions for the New Year
  4. 2011.04.26 등록금: 구조의 문제 혹은 사고의 고착 (2)
  5. 2011.03.08 외래어 남용, 이대로 방치해도 되나? (1)

Trends in opera

Writings 2015.01.06 09:57

A quick glance at what major opera houses have planned for this season.


1. Italy


114 performances in Milan. Note that Teatro alla Scala's season consists of a single year, unlike other theaters. 13 out of 16 titles are Italian. Puccini's major works are featured; only Madama Butterfly is conspicuously missing. Strong bel canto presence but where is Bellini?



2. France


190 performances in Paris. Six out of 16 operas are French. The Paris Opera is keeping Carmen in the morgue this season.



3. Austria



Wiener Staatsoper: Hire a web designer and fix your site. By the way, it's still 2014/2015.



4. United States


221 performances in New York City. 120 of which are assigned to opera's favorite composers and their most famous works, not that there is anything wrong with the decision. Probably the best return for one's season tick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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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을 보내고

Writings 2014.02.01 23:12

아직도 외출하면 그녀를 만나러 가는 착각에 빠진다. 내가 도착하면 그곳에 그녀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서둘러 날 보기 위해 이리로 올 테고, 우린 중간에서 만나 손을 꼭 붙잡고 다시 지하철에 오를 것이다. 이젠 애써 기억하려 해도 얼굴 생김새나 목소리가 또렷하지 않지만 내가 향한 장소에 미리 와있는 그녀가 안녕이란 말 대신 머리를 도리도리 흔들며 날 반길 때의, 심장이 멈추는 듯한, 느낌이 종종 든다. 아마도 그녀가 빼어난 미인이서도, 내가 한 사람을 잊지 못해서가 아니라 내 청춘의 추억이 너무나 아름다웠기 때문이리라.

 

내가 잘 가라 하기 전에 1월도 날 떠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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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solutions for the New Year

Writings 2014.01.13 23:07

No more hiding from uncomfortable memories.
Write again. Blast that block and get to work.
Embrace optimism, befriend euphemism, and expel negativism.

Keywords: ① closure, ② synthesis, ③ magnanimity



Addendum: Last year's keywor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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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금: 구조의 문제 혹은 사고의 고착

Writings 2011.04.26 01:00

자본주의의 최고 미덕은 능력주의(meritocracy)에 의한 계급상승이다. 개인의 배경과 무관하게 제대로노력하면 인정을 받고 성공까지 얻을 수 있다는 전제를 바탕으로 오늘날 지배적인 경제체제로 자리매김했다. 지배계급은 이러한 구조를 유지하기 위해 시기 마다 대중에 내세울 상징적 인물들을 요구한다. 그러나 한때 상징성을 지녔던 재벌집단이 훑고 지나간 사회는 황량하다 못해 삭막하다. 다수의 국민은 그들이 펼치는 생존경기에 내밀린 개인에 불과하다. 그 와중에서 특히 슬픈 현실은 요즘 대학생들이 가장 처절하게 달리고 있다는 데 있다. 그들은 어째서, 무엇을 위해 그토록 한 가지 목적을 위해 젊음을 바치고 있는가?

최근 다양한 매체를 통해 대학생들의 이야기를 접하고 있다. 아마도 민주화 운동 이후에 학생집단이 이 정도의 관심을 받은 적이 있었나 싶다. 주제는 늘 한결 같다. 등록금이 과도하게 높고 경쟁이 단군 이래 가장 치열하여 취업하기 어렵다는 내용으로, 감정에 호소하는 부류도 있고 냉담하게 받아들이는 이들도 있다.

암흑의 심연으로 빠져드는 구조

문제는 능력주의의 폐단이다. ‘경쟁은 어떤 개인의 능력이 가장 우수한지 가리는 수단일 뿐이다. 구조의 문제는 여기에 있다. 조기교육이 낳은 악은 어린아이들에게 화합이 아닌 경쟁을 주입했다는 점이다. 실은 계급상승의 환상 보다 하락이라는 공포가 더욱 채찍을 들게 만들고 있지 않은가? 이로부터 파생된 현상을 진찰할 필요가 있다.

하소연을 늘어놓는 대학생들의 대부분은 구조를 바꿀 생각은 전혀 없고, 오직 부조리한 기득권층에 어떻게든 편입하고 싶어서 조바심을 내고 있다. 등록금 걱정 없이 학교를 다니는 학우들을 욕하지만 그들처럼 방학이 오면 연수를 가서 이력서를 화려하게 장식하고자 하며, 대기업에 취업하여 기득권의 일원이 되고자 하는 생각들로 가득하다. 그들은 입으로 기성세대가 경쟁을 미화하고 부추긴다고 욕하면서도 몸으로는 분주히 복마전에 뛰어들 준비를 하고 있다. 불만은 가득한데 대안을 찾기 보다는 앞만 향해 가려고 한다. 앞을 향해 가고자 한다면 장애물을 만났을 때 극복할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지금 상태로는 대규모 학생운동이 너무나 당연한 해답임에도 조직적인 시위를 하는 학생회는 보이지 않는다.

솔직히 말해보자. 과거처럼 목숨을 걸고 독재정권 타도를 외치자는 것도 아닌데 단결된 운동을 안 하는 이유는 마음속으로는 주변 경쟁자가 탈락하길 바라는 이기심 때문 아닌가? 남의 손을 더럽혀 공동의 이익을 확보하되, 그 사이에 본인은 그들을 앞서가고자 하는 옹졸한 사고가 아닌가?

정치과정이 답일까? 야권은 자중지란 보다 정체성의 상실이라는 총체적 위기에 봉착해 있다. 기존까지 진보나 좌파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분배 조차 우파에서 선택적 복지로 포장하여 가로챘으며, 중도까지 과감하게 영역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야권의 구호를 차례로 붕괴시켰다. 미국의 공화당, 이태리의 포르자 이탈리아 우파정당이 대표적인 사례다. 국민의 불만이 커질수록 오히려 우파가 득세할 가능성이 커지는 이유 중 하나는 외부요인으로 탓을 돌리고 민족주의를 자극하기 용이하기 때문이다. 기득권에 편입하고자 하는 청년층은 보수에서 들고 나오는 승부수에 그러니까 진부한 부의 축적과 신분상승이라는 선전 휘말리게 되어있다. 지금 대통령과 보수당을 뽑은 국민들을 보라. 선거가 현실개선에 요원한 이유다. 이런 사유로 구조 내에서 정치적 문제해결은 불가능하다. 정치의 틀 밖에서 급진적인 운동을 통해 일으킨 변혁을 정치 구조 내부로 내던져야 한다. 하루가 멀다고 축적되는 청년층의 좌절과 분노는 이런 경로로 사용하지 않으면 보다 깊은 실망감만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여태까지 기업 입장에서는 지원자들이 알아서 경쟁을 해준 덕에 채용이 용이했다. 그러나 요즘 대기업 인사담당자들이 대학교들이 학점에 관대하여 변별력이 떨어진다는 황당한 발언을 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교육기관이 기업의 인사평가를 위탁 받은 하청업체가 아니지 않은가? 지원자를 변별하는 행위는 기업의 책임이 아닌가? 자신들의 업무태만을 어찌 교육기관에 전가하려 드는가? 이는 오만방자한 태도다.

근데 대학들은 자신들의 신규채용, 즉 신입생 모집을 위해 학점을 남발하고 있다. 상위권 대학이 아니라면 취업이 잘된다는 사업설명서가 통하니까. 이 와중에 아쉬울 게 없는 상위권 대학은 등록금을 더 올린다. 대학재단의 투기 악순환은 골이 깊고, 교육을 위한 재투자는 부실하다. 누군가 당선을 목표로 반값 할인이라는 거짓 공약을 지킨다고 가정하자. 아니, 유럽처럼 국립대학은 아예 면제를 해준다고 하자. 우리가 당면한 구조 앞에서는 초유의 고학력자의 대량 실업으로 밖에 이어질 수 밖에 없다. 대학생들은 자신들이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이미 문제의 일부가 됐다. 통계청에 의하면 2011 3월 청년 실업률은 9.5%로 연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는 실정이다. 예비 실업자들이여, 40만 명 남짓한 청년층 무직자 공동체가 여러분을 환영할 것이다.

한국과학기술원(이하 과기원) 문제를 살펴보자. 교육개혁의 시행착오를 뼈저리게 보여주는 이 시대의 비극이 여기 벌어지고 있다. 그나마 과기원 재원이 불상사를 일으켰을 때 비로서 사회는 관심을 갖는다. 여기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 인권의 차등화가 그것이다. 여기서 나타난 현상은 비극으로, 사회구성원들 조차 사람의 귀천을 나누는 데 동조해버렸다. 심지어 젊은 검사가 죽어도 언론이 보도하지만 다른 여러 대학이나 고등학교 학생들의 자살은 아예 다뤄지지 않는다. '보라! 인재께서 타계하시면 세간이 주목한단다!' 반면 그 존재의 흔적 조차 남지 않는 소외된 이들은 인간의 자격에도 들지 못하나 보다.

두 번째는 능력주의에 편승한 편법적인 대학 순위 조작이다. 교육기관에 등급을 매기는 행위는 정당하다. 국가는 자국민 중 우수한 인재를 양성할 의무가 있으며 자국의 교육위상 제고라는 숭고한 목적을 달성할 권리가 있다. 그러나 오직 권위를 확보하기 위한 순위 조작은 옳지 못하다. 과기원을 비롯한 서울에 있는 모든 대학은 점수 올리기에 혈안이 돼있다. 채택한 방법론이 근본적 문제다. 숫자놀이로 전락한 몇 가지 예를 들면 교수의 논문발표 빈도, 외국어 강의 개수, 외국인 재학생 인구 따위의 숫자에 목매달고 있다. 서양교육체제를 채택했으면 기본부터 제대로 다졌어야 한다. 쉽게 풀이하자면 인위적으로 평가항목에서 높은 점수를 획득할 수 있는 요령만 짚어서 고른 성장이 아닌 기형적 외관 차리기에 몰두했다는 말이다. 저명한 학자들을 영입하여 학생을 가르치지 못할 망정 퇴직관료들을 몰래 불러들여 수업 한번 시키지 않고 임금을 지불하는 부조리한 현실에 기가 막힐 따름이다. 과기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편법으로 비약적인 약진을 실현했다. 얼마나 오래갈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서는 까닭은 강제된 제도가 선순환을 이루기 어렵기 때문이다.

여기 공약을 지키지 않은 정부가 하나 더 있다. 작년 5, 영국 자유민주당 대표 닉 클레그는 대학 등록금 인상을 하지 않겠다고 공약하였고, 다수당이 되지 못하자 보수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했다. 그러나 이들은 긴축재정을 이유로 2010 129 고등교육 지원금을 감축하고 기존에 3,290 파운드였던 등록금 상한제를 9,000 파운드로 올리는 법안을 표결에 부친다고 공표했다. 11 10일부터 본격적인 시위가 시작됐다. 법안 투표일인 12 9일까지 네 번의 시위가 일어났는데 영국 각지에서 모인 학생과 교수 등 매번 25,000~52,000명이 집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일 의회에서 법안은 통과됐다. 허나 민중의 분노는 식지 않아 3 26일에 노동조합회의 주최로 일어난 반정부 행진시위에 학생들을 포함한 영국인 40만 명(위에 언급한 한국의 청년층 실업자 수치와 대략 일치)이 참여했다. 여기서 끝난 게 아니다. 이들은 5 1(May Day)에 재차 집회를 갖기로 했다. 한편, 웨일즈 정부는 웨일즈 학생의 등록금 동결을 약속했고, 마찬가지로 스코틀랜드 정부는 스코틀랜드 학생들에게 계속해서 등록금 면제혜택을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한국의 대학생들과 교수들, 강사들은 숨죽이고 세태를 관망하고 있기만 할 것인가? 나는 오늘날의 대학생들에게 학교 밖으로 나와서 움직이라고 간청한다. 일부 학생회는 비정규직 인부들의 최저임금 달성이라는 작은 승리를 쟁취했다. 이 자신감을 가지고 보다 급진적인 운동을 펼쳐야 한다. 급진적 운동을 과격시위로 착각하지는 말길 바란다.

틀 안에서 개선은 단순하지만 어렵다. 정치인들이 조속히 재벌기업의 정규직 채용 확대 법안을 통과시키고 비정규직 연장을 철폐하면 큰 숫자를 흡수할 수 있다. 어려운 이유는 정경유착이라는 철의 장벽이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판을 다시 짜는 게 어떨까? 아이들 교육부터 다시 손봐야 한다. 경쟁과 취업만이 생존의 유일한 방법이 아니라는 사실을 가르치고 반드시 서울과 인근 위성도시에 집을 소유하고 차도 몰아야 한다는 구시대적 유물론으로부터 거리를 두자. 철학은 커녕 자기개발서 조차 제대로 읽히지 않는 문화를 개선하자. 이렇게 될 때까지 급진적인 운동의 불을 끄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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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래어 남용, 이대로 방치해도 되나?

Writings 2011.03.08 01:23

"~~ 스캔들이 핫 이슈”, “내츄럴한 룩이 메이크업의 포인트”, “프레스티지 고객 이벤트”, “전통 삼계탕 레시피”…

두 개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으로서 우리말에 각종 외래어를 무분별하게 섞어 쓰는 관행이 몹시 불편한데 이는 대다수의 현대인에게 편협한 언어 민족주의로 비칠지 모르겠다. 외래어를 비정상적으로 사용하는 현실 앞에서 되려 내가 시대의 흐름을 거부하는 고집스런 국어 보수주의자인지 자문하게 된다.

무엇이 어떻게 잘못됐는지 짚어보고 해결방안까지 제시하기엔 나의 전문성이 턱없이 부족하지만 함께 고민해볼 문제라 생각되어 공유하고자 한다. 시작이 절반이라면 관심은 그 출발점이니까.

나는 유년시절 외국에서 유치원부터 초등학교 저학년을 다닌 탓에 한글을 또래 보다 늦게 배웠고 치욕스런 경험도 여러 번 겪었다. 늘 발음과 글씨에 대한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받아쓰기 시간은 고역이었다. 담임이란 인사는 나의 공책을 뺏어 흔들며 내가 외계인 언어를 썼노라며 급우들에게 아름다운 글씨의 소중함을 일깨웠다. 이렇게 타의에 의해 나 스스로를 희생하고 나서 삼 년 뒤 다시 외국으로 나갔을 때는 영어를 잊고 지내 고생을 했다. 언어에 대한 고민은 한참 뒤에 나를 찾아왔다. 20대에 국내외에서 번역과 통역을 하다 보니 번역체에 염증을 느꼈고 우리말 고유의 표현방식을 갈구하며 한글만의 매력에 빠졌다. 아직 공부가 부족한데 내 문체가 딱딱하고 번역을 한 글처럼 보이는 원인은 여기에 있다.

혹자는 그래도 내가 외국생활의 수혜자이며 그 결과가 부럽다고 한다. 이는 과정을 간과한 오류다. 정작 본인들은 손을 놓아 포기했지만 인정하지 못하고 나 같은 사람에게서 핑계를 찾는 비겁한 궤변이다. 이 논리에 의하면 외국에 한번도 나가지 않고 영어를 유창하게 사용하는 사람들은 존재할 수 없을뿐더러 영어권으로 유학을 다녀온 사람들이 회화 조차 제대로 못하는 현상을 설명할 길이 없다. 조기유학은 예외일까? 그 아이들이 한글을 똑바로 익히기나 했나? 작년 한글의 날 한 구인구직 기관의 설문조사[각주:1]에서 대학생 94%가 우리말 사용이 어렵다고 한 데에는 중심을 잡지 못한 부모의 영향의 크다. 이들은 진지한 성찰 없이 막연한 동경으로 자신들이 왜 외래어를 습관적으로 남발하는지 모른다. 어쩌다가 이 지경까지 왔는가?

아래 기사의 일부를 살펴보자.

한글 전용 교육과 한자어 교육의 약화, 영어 교육의 강화 등은 한국어 내에서 한자어와 영어의 지위를 서서히 바꿔놓고 있다. 노명희 교수는 "예전엔 한자어가 조어력이 뛰어나 신어 형성의 재료로 가장 많이 쓰였으나 한자어가 차지하던 위상이 외래어, 특히 영어로 넘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2001년 신어 중엔 한자어가 포함된 신어가 79.5%이고 외래어는 25.9%에 불과했지만 2004년엔 외래어가 포함된 신어가 55.1%로 크게 늘었다.[각주:2]

수출중심 경제정책에 있어서 무역언어는 국가 부흥에 중요한 요소다. 정부는 60년대에 경공업에서 점진적으로 중공업을 향해 달리고 있었고 수출을 성장의 열쇠라 천명했다. 종합상사를 키우고 외화획득의 문을 활짝 열기 위한 수단인 인적자원을 양성하기 위해 교육을 손본다. 잠시 영어교육의 역사를 훑어보면 위 기사의 문맥 파악이 가능하다.

1954년 미군부에 의해 수립된 교수요목기를 거쳐 1963년 제2차 교육과정에 이르러 영어는 제1외국어가 되었고, 1974년 제3차 교육과정에서 중학교 및 고등학교의 필수과목으로 자리잡았다. 1995년에 제6차 교육과정에 들어서 초등학교에도 영어과가 도입되고 1997년부터 순차시행 했는데 이 시기가 오늘날의 영어 지옥의 시초가 아닌가 싶다. 1996년에 최초의 영어 유치원이 개업하면서 어떻게든 자식이 경쟁적 우위를 점하기를 바란 부모는 사교육 지출을 앞당겼다. 그러는 동시에 본인들은 자식 보다 영어를 못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는지 일상대화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외래어를 포용하기 시작했다. 21세기로 진입하며 외래어 열차는 폭주한다.

이들은 자신이 사용하는 외래어의 정확한 의미나 철자를 아는지 상당히 의심스럽다. 또한 같은 단어를 국어사전에서 찾을 능력이 있는지도 의문이다.

얼마 전 아침방송에 원로 연기자 가족이 출연했다. 그가 배우로 활동하기 전에 치과의사였는데 부인이 직종변경에 대한 사연을 설명하는 시간이 주어졌다. 치과의사라는 말을 놔두고 자부심이 넘치는 목소리로 한때는 덴티스트였다고 말하는 광경을 보며 영어에 집착하는 현상을 생각해보았다. 전문분야 마다 고유의 단어가 있는데 (: 치열 교정 의사(orthodontist)) 과연 시청자를 위한 배려로 포괄적인 의미인 덴티스트를 썼을까? 전문직을 신봉하는 한국에서 의사들의 세부직업을 친척 이름 보다 잘 아는데 말이다. 자신의 남편 혹은 사위가 정형외과(orthopedist), 안과(ophthalmologist), 피부과(dermatologist) 의사라고 말하면서도 영어를 쓸 때는 그냥 닥터라고 하는 사람들은 공부 좀 더 해야겠다. 60~80년대 미국으로 이주한 한국인들이 갖는 우월감은 이제 시대착오적 발상이 아닐까? 미국이 정녕 아름다운 美國이라 굳게 믿는 이들 덕분에 상류층부터 고상함의 잣대로 외래어를 써대니 대중도 따라 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대중매체까지.

방송에 나오는 외래어를 보고 있노라면 고삐 풀린 망아지 같다는 인상을 받는다. 교육수준이나 의식이(아마도 둘 다) 떨어지는 작가와 연예인들이 방송을 장악하며 문제는 더욱 심각해졌다. 관계자들에게 정확한 의미나 표현은 관심 밖이다. 예를 들어 오버하다를 들 수 있는데 원래는 ‘overreact’라는 동사다. 순위를 매길 때 베스트몇 위라고 하는데 이미 최상급이라 등급을 나눌 수 없다. 여기엔 top이 맞다.  본격적인 말 줄임 시대에 상황이란 효율적인 단어 대신 시추에이션을 선택하거나 '연예인'을 엔터테이너로 대체한다. 외래어를 쓰면 시청자가 더 즐겁고 시청률이 올라서 광고수입이 늘어나나? 만약 상관관계가 있더라도 공중파 방송은 엄격한 기준을 갖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정권에 비판적인 사장과 제작진을 내쫓을 게 아니라 외래어를 멋대로 쓰는 사람들부터 정리하길 희망한다.

영어로 자신을 포장하려 드는 속물들이 늘어나고 있다. 기존 사회에서는 각 집단 마다 고유의 언어를 사용하여 결속력을 다지거나 효율적인 소통의 수단으로 활용했는데 도가 넘어선 것이다. 가령 컨설턴트는 기업 경영에 전문적인 상담을 제공하는 이들, Accenture Monitor Group 등 컨설팅 업계의 종사자에게 사용하던 표현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전문직의 명함을 슬쩍 훔친 자들이 활개를 치는 게 요즘 세상이다. 이제는 누구나 컨설턴트다. 부동산 컨설턴트, 중고차 컨설턴트, 뷰티 컨설턴트… 사회의 배려가 떨어지는 자신들의 처지를 비관하기 보다 사회구성원의 인정을 받기 위한 승화과정으로 외래어를 쓰기로 작정한 것이다. 영어를 쓰면 자아가 더 존귀해지나 보다. 미용사도 헤어 디자이너라고 부르지 않는가? 직업여성은 매우 부정적으로 쓰이지만 커리어 우먼은 거절하는 이가 없다. 매춘부도 커리어 우먼인데 말이다. 외래어 안에서 하나되는 우리를 발견할 수 있어서 한편으로 기쁘지만 우리말을 사용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 아쉽다.

허영심 하면 빠질 수 없는 게 자본주의에 빌붙어 기생하는 업계인데 이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하나 같이 외래어를 사용한다. 패션 업계가 단연 그 선두에 있다.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 패션에 대응하는 우리말이 없다는 점이 아쉽다. 조선시대에 혹은 북한의 사전에는 어떻게 표기되는지 찾아봐야겠다.) 색상은 컬러, 각종 색채는 모두 영어를 사용하며 세련됐다는 표현은 더 이상 세련되지 못한지 시크로 대체된 지 오래다. 이는 허영심에 호소하는 부류가 당도한 당연한 도착점인지 모른다. 화장품 이름이나 설명에 영어가 빠지면 팔리지 않는다. 이들 제품은 가격이 높을수록 잘 팔린다. 건설업계는 우리를 중세로 인도한다. 타워팰리스, 롯데캐슬, 힐스테이트 등 근대 이전의 귀족적 삶을 재현하려고 용 쓴다. 졸부가 이런 축소된 성에 들어서는 순간 족보가 바뀌기라도 하나보다. 금융권도 이런 분들을 융숭히 모시기 위해 프라이빗 뱅킹이라는 간판을 걸고 영업을 한다. 왜냐하면 자산관리라고 하면 보험 컨설턴트로 착각할 테니까.

나의 장황한 독설은 권재일 국립국어원장이 국어원 인사말에 남긴 아래 문단으로 요약된다.

말이 오르면 나라도 오르고 말이 내리면 나라도 내리나니라

(중략)

우리는 역사적으로 우리말과 우리글에 대한 자긍심이 부족한 까닭에 긴 세월 동안 말과 글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습니다. 옛 조선 시대가 그러하였고, 21세기인 현재도 그러합니다. (중략) 외국어가 필요 없이 많이 사용되고 있음이 그 한 예입니다.

언어는 시대에 따라 변하기에 사용자인 우리가 각별하게 신경 써야 한다. 일제 때는 외압에 의해 언어가 침탈 당했다면 오늘날 우리는 자발적으로 한글을 버리고 있다. 주시경 선생은 갔고 이제는 국어 연구와 외래어 순화가 외면당하고 있다. 국어원이 2003년에 공지한 순화 자료집에 나온 외래어는 네 개를 제외하고는 오늘날 그대로 쓰인다.[각주:3] 대기업의 하청업체로 전락한 대학들은 국문과를 축소하고 있다. 위기의식을 갖지 않는다면 아래 글을 읽어보길.

<언어의 종말>(작가정신 펴냄)의 저자 앤드루 달비에 따르면, 언어 분화의 역과정, 곧 언어의 통합이 진행되고 있으며 이것이 현재 인류의 언어가 처해 있는 위험이다. 더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는 통계를 보면, 현재 전세계에서 제1언어로 사용되고 있는 언어는 약 5천 개이며 이 중 21세기에만 2,500개가량의 언어가 사라질 것이라고 한다. 평균 2주에 1개꼴이다. 그리고 장기적으로는 200년 이내에 전세계적으로 200개 정도의 언어만 남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200이란 수는 국가의 수와 대략 일치한다.

 (중략) 

각 언어는 세계를 보고 나누고 구분하는 각기 다른 관점을 갖고 있으며 이에 따라 그것이 그려내는 현실 세계의 지도도 다를 수밖에 없다. , 각 언어는 사물이 존재하는 방식에 대해서 각기 다른 통찰력을 제공해주며 우리에겐 그러한 대안적인 세계관들이 필요하다. 한 언어의 소실은 곧 인간의 경험을 이해할 수 있는 한 가지 대안의 상실이다. 게다가 더 중요하게는 다른 언어와의 상호작용만이 우리 각자의 언어를 더욱 유연하고 창조적으로 만들어준다.[각주:4]

어제 기획재정부가 65세 고령인구 비율이 2050년에는 38.2%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이런 추세라면 훈민정음이 창시된 지 천 년도 채 되지 않아 한글이 사라질 수 있다. 보다 적극적인 인구정책과 함께 언어정책도 강구해야 함이 옳다.

언어정책은 자국어에 대단한 자부심을 가진 민족이 사는 프랑스에서 찾아볼 수 있다. 1994년 당시 문화부장관 쟈크 투봉이 제정한 Loi no 94-665 du 4 Août 1994 relative à l’emloi de la langue française, 혹은 간단히 투봉법이다. 정부간행물, 모든 광고, 직장 및 계약서에 불어 사용을 명령하고 방송에서는 일정부분 불어 노래를 내보내라는 내용을 골자로 한 자국어보호법이다. 국내에는 충무로 보호법이 시행되고 있는데(screen quota) 정부 차원에서 국어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

다시 국어원을 향해 고개를 돌려보자. 여기 행정기관 공공언어 진단을 위한 용역 입찰 공고가 있다.[각주:5] 행정기관의 외국어나 어려운 한자어 남용 실태를 조사하면 8천만원을 지불한단다. 조회수는 고작 40인데 내가 몇 번 눌렀으니 별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다. 보도자료도 내놓지 않은듯하다. 'G20 주최국'다운 품격 있는 국어 관리가 필요한 시점이다. 형님 예산을 챙기기 보단 국립국어원과 겨레말큰사전 사업에 지원금을 할당하길 바란다. 우리는 이런 정책을 들고 나오는 후보를 뽑아야 한다.

한류가 아무리 강렬한들, 동남아에서 한국어시험에 목숨을 걸고 달려들어도 정작 우리가 한글의 소중함을 외면하면 한글이 갖는 경쟁력을 상실한다. 언어 순수주의는 자국 보다 정치, 문화, 경제적으로 우월한 언어의 침범에서 태동한다. 우리는 문화적 자신감을 충분히 갖고 있는지, 새로운 언어 순수주의에 근접한 운동을 펼칠 수 있을지 한번쯤은 고민해봐야 하겠다.

  1. 대학생 10명 중 9명 “우리말 사용 어려워요” http://news.jkn.co.kr/article/news/20101008/5034469.htm [본문으로]
  2. <우리말이 바뀐다> ① 매년 수백개씩 생기는 신어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0/10/12/0200000000AKR20101012175100026.HTML [본문으로]
  3. 낯선 외국어를 순화한 『언론 외래어 순화 자료집』 발간(보도 자료) http://www.korean.go.kr/09_new/notice/notice_view.jsp?idx=155 [본문으로]
  4. 거꾸로 바벨탑 이야기 http://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23515.html [본문으로]
  5. 입찰재공고 - 행정기관 공공언어 진단 http://www.korean.go.kr/09_new/notice/notice_list.jsp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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