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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래어 남용, 이대로 방치해도 되나?

Writings 2011.03.08 01:23

"~~ 스캔들이 핫 이슈”, “내츄럴한 룩이 메이크업의 포인트”, “프레스티지 고객 이벤트”, “전통 삼계탕 레시피”…

두 개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으로서 우리말에 각종 외래어를 무분별하게 섞어 쓰는 관행이 몹시 불편한데 이는 대다수의 현대인에게 편협한 언어 민족주의로 비칠지 모르겠다. 외래어를 비정상적으로 사용하는 현실 앞에서 되려 내가 시대의 흐름을 거부하는 고집스런 국어 보수주의자인지 자문하게 된다.

무엇이 어떻게 잘못됐는지 짚어보고 해결방안까지 제시하기엔 나의 전문성이 턱없이 부족하지만 함께 고민해볼 문제라 생각되어 공유하고자 한다. 시작이 절반이라면 관심은 그 출발점이니까.

나는 유년시절 외국에서 유치원부터 초등학교 저학년을 다닌 탓에 한글을 또래 보다 늦게 배웠고 치욕스런 경험도 여러 번 겪었다. 늘 발음과 글씨에 대한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받아쓰기 시간은 고역이었다. 담임이란 인사는 나의 공책을 뺏어 흔들며 내가 외계인 언어를 썼노라며 급우들에게 아름다운 글씨의 소중함을 일깨웠다. 이렇게 타의에 의해 나 스스로를 희생하고 나서 삼 년 뒤 다시 외국으로 나갔을 때는 영어를 잊고 지내 고생을 했다. 언어에 대한 고민은 한참 뒤에 나를 찾아왔다. 20대에 국내외에서 번역과 통역을 하다 보니 번역체에 염증을 느꼈고 우리말 고유의 표현방식을 갈구하며 한글만의 매력에 빠졌다. 아직 공부가 부족한데 내 문체가 딱딱하고 번역을 한 글처럼 보이는 원인은 여기에 있다.

혹자는 그래도 내가 외국생활의 수혜자이며 그 결과가 부럽다고 한다. 이는 과정을 간과한 오류다. 정작 본인들은 손을 놓아 포기했지만 인정하지 못하고 나 같은 사람에게서 핑계를 찾는 비겁한 궤변이다. 이 논리에 의하면 외국에 한번도 나가지 않고 영어를 유창하게 사용하는 사람들은 존재할 수 없을뿐더러 영어권으로 유학을 다녀온 사람들이 회화 조차 제대로 못하는 현상을 설명할 길이 없다. 조기유학은 예외일까? 그 아이들이 한글을 똑바로 익히기나 했나? 작년 한글의 날 한 구인구직 기관의 설문조사[각주:1]에서 대학생 94%가 우리말 사용이 어렵다고 한 데에는 중심을 잡지 못한 부모의 영향의 크다. 이들은 진지한 성찰 없이 막연한 동경으로 자신들이 왜 외래어를 습관적으로 남발하는지 모른다. 어쩌다가 이 지경까지 왔는가?

아래 기사의 일부를 살펴보자.

한글 전용 교육과 한자어 교육의 약화, 영어 교육의 강화 등은 한국어 내에서 한자어와 영어의 지위를 서서히 바꿔놓고 있다. 노명희 교수는 "예전엔 한자어가 조어력이 뛰어나 신어 형성의 재료로 가장 많이 쓰였으나 한자어가 차지하던 위상이 외래어, 특히 영어로 넘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2001년 신어 중엔 한자어가 포함된 신어가 79.5%이고 외래어는 25.9%에 불과했지만 2004년엔 외래어가 포함된 신어가 55.1%로 크게 늘었다.[각주:2]

수출중심 경제정책에 있어서 무역언어는 국가 부흥에 중요한 요소다. 정부는 60년대에 경공업에서 점진적으로 중공업을 향해 달리고 있었고 수출을 성장의 열쇠라 천명했다. 종합상사를 키우고 외화획득의 문을 활짝 열기 위한 수단인 인적자원을 양성하기 위해 교육을 손본다. 잠시 영어교육의 역사를 훑어보면 위 기사의 문맥 파악이 가능하다.

1954년 미군부에 의해 수립된 교수요목기를 거쳐 1963년 제2차 교육과정에 이르러 영어는 제1외국어가 되었고, 1974년 제3차 교육과정에서 중학교 및 고등학교의 필수과목으로 자리잡았다. 1995년에 제6차 교육과정에 들어서 초등학교에도 영어과가 도입되고 1997년부터 순차시행 했는데 이 시기가 오늘날의 영어 지옥의 시초가 아닌가 싶다. 1996년에 최초의 영어 유치원이 개업하면서 어떻게든 자식이 경쟁적 우위를 점하기를 바란 부모는 사교육 지출을 앞당겼다. 그러는 동시에 본인들은 자식 보다 영어를 못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는지 일상대화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외래어를 포용하기 시작했다. 21세기로 진입하며 외래어 열차는 폭주한다.

이들은 자신이 사용하는 외래어의 정확한 의미나 철자를 아는지 상당히 의심스럽다. 또한 같은 단어를 국어사전에서 찾을 능력이 있는지도 의문이다.

얼마 전 아침방송에 원로 연기자 가족이 출연했다. 그가 배우로 활동하기 전에 치과의사였는데 부인이 직종변경에 대한 사연을 설명하는 시간이 주어졌다. 치과의사라는 말을 놔두고 자부심이 넘치는 목소리로 한때는 덴티스트였다고 말하는 광경을 보며 영어에 집착하는 현상을 생각해보았다. 전문분야 마다 고유의 단어가 있는데 (: 치열 교정 의사(orthodontist)) 과연 시청자를 위한 배려로 포괄적인 의미인 덴티스트를 썼을까? 전문직을 신봉하는 한국에서 의사들의 세부직업을 친척 이름 보다 잘 아는데 말이다. 자신의 남편 혹은 사위가 정형외과(orthopedist), 안과(ophthalmologist), 피부과(dermatologist) 의사라고 말하면서도 영어를 쓸 때는 그냥 닥터라고 하는 사람들은 공부 좀 더 해야겠다. 60~80년대 미국으로 이주한 한국인들이 갖는 우월감은 이제 시대착오적 발상이 아닐까? 미국이 정녕 아름다운 美國이라 굳게 믿는 이들 덕분에 상류층부터 고상함의 잣대로 외래어를 써대니 대중도 따라 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대중매체까지.

방송에 나오는 외래어를 보고 있노라면 고삐 풀린 망아지 같다는 인상을 받는다. 교육수준이나 의식이(아마도 둘 다) 떨어지는 작가와 연예인들이 방송을 장악하며 문제는 더욱 심각해졌다. 관계자들에게 정확한 의미나 표현은 관심 밖이다. 예를 들어 오버하다를 들 수 있는데 원래는 ‘overreact’라는 동사다. 순위를 매길 때 베스트몇 위라고 하는데 이미 최상급이라 등급을 나눌 수 없다. 여기엔 top이 맞다.  본격적인 말 줄임 시대에 상황이란 효율적인 단어 대신 시추에이션을 선택하거나 '연예인'을 엔터테이너로 대체한다. 외래어를 쓰면 시청자가 더 즐겁고 시청률이 올라서 광고수입이 늘어나나? 만약 상관관계가 있더라도 공중파 방송은 엄격한 기준을 갖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정권에 비판적인 사장과 제작진을 내쫓을 게 아니라 외래어를 멋대로 쓰는 사람들부터 정리하길 희망한다.

영어로 자신을 포장하려 드는 속물들이 늘어나고 있다. 기존 사회에서는 각 집단 마다 고유의 언어를 사용하여 결속력을 다지거나 효율적인 소통의 수단으로 활용했는데 도가 넘어선 것이다. 가령 컨설턴트는 기업 경영에 전문적인 상담을 제공하는 이들, Accenture Monitor Group 등 컨설팅 업계의 종사자에게 사용하던 표현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전문직의 명함을 슬쩍 훔친 자들이 활개를 치는 게 요즘 세상이다. 이제는 누구나 컨설턴트다. 부동산 컨설턴트, 중고차 컨설턴트, 뷰티 컨설턴트… 사회의 배려가 떨어지는 자신들의 처지를 비관하기 보다 사회구성원의 인정을 받기 위한 승화과정으로 외래어를 쓰기로 작정한 것이다. 영어를 쓰면 자아가 더 존귀해지나 보다. 미용사도 헤어 디자이너라고 부르지 않는가? 직업여성은 매우 부정적으로 쓰이지만 커리어 우먼은 거절하는 이가 없다. 매춘부도 커리어 우먼인데 말이다. 외래어 안에서 하나되는 우리를 발견할 수 있어서 한편으로 기쁘지만 우리말을 사용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 아쉽다.

허영심 하면 빠질 수 없는 게 자본주의에 빌붙어 기생하는 업계인데 이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하나 같이 외래어를 사용한다. 패션 업계가 단연 그 선두에 있다.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 패션에 대응하는 우리말이 없다는 점이 아쉽다. 조선시대에 혹은 북한의 사전에는 어떻게 표기되는지 찾아봐야겠다.) 색상은 컬러, 각종 색채는 모두 영어를 사용하며 세련됐다는 표현은 더 이상 세련되지 못한지 시크로 대체된 지 오래다. 이는 허영심에 호소하는 부류가 당도한 당연한 도착점인지 모른다. 화장품 이름이나 설명에 영어가 빠지면 팔리지 않는다. 이들 제품은 가격이 높을수록 잘 팔린다. 건설업계는 우리를 중세로 인도한다. 타워팰리스, 롯데캐슬, 힐스테이트 등 근대 이전의 귀족적 삶을 재현하려고 용 쓴다. 졸부가 이런 축소된 성에 들어서는 순간 족보가 바뀌기라도 하나보다. 금융권도 이런 분들을 융숭히 모시기 위해 프라이빗 뱅킹이라는 간판을 걸고 영업을 한다. 왜냐하면 자산관리라고 하면 보험 컨설턴트로 착각할 테니까.

나의 장황한 독설은 권재일 국립국어원장이 국어원 인사말에 남긴 아래 문단으로 요약된다.

말이 오르면 나라도 오르고 말이 내리면 나라도 내리나니라

(중략)

우리는 역사적으로 우리말과 우리글에 대한 자긍심이 부족한 까닭에 긴 세월 동안 말과 글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습니다. 옛 조선 시대가 그러하였고, 21세기인 현재도 그러합니다. (중략) 외국어가 필요 없이 많이 사용되고 있음이 그 한 예입니다.

언어는 시대에 따라 변하기에 사용자인 우리가 각별하게 신경 써야 한다. 일제 때는 외압에 의해 언어가 침탈 당했다면 오늘날 우리는 자발적으로 한글을 버리고 있다. 주시경 선생은 갔고 이제는 국어 연구와 외래어 순화가 외면당하고 있다. 국어원이 2003년에 공지한 순화 자료집에 나온 외래어는 네 개를 제외하고는 오늘날 그대로 쓰인다.[각주:3] 대기업의 하청업체로 전락한 대학들은 국문과를 축소하고 있다. 위기의식을 갖지 않는다면 아래 글을 읽어보길.

<언어의 종말>(작가정신 펴냄)의 저자 앤드루 달비에 따르면, 언어 분화의 역과정, 곧 언어의 통합이 진행되고 있으며 이것이 현재 인류의 언어가 처해 있는 위험이다. 더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는 통계를 보면, 현재 전세계에서 제1언어로 사용되고 있는 언어는 약 5천 개이며 이 중 21세기에만 2,500개가량의 언어가 사라질 것이라고 한다. 평균 2주에 1개꼴이다. 그리고 장기적으로는 200년 이내에 전세계적으로 200개 정도의 언어만 남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200이란 수는 국가의 수와 대략 일치한다.

 (중략) 

각 언어는 세계를 보고 나누고 구분하는 각기 다른 관점을 갖고 있으며 이에 따라 그것이 그려내는 현실 세계의 지도도 다를 수밖에 없다. , 각 언어는 사물이 존재하는 방식에 대해서 각기 다른 통찰력을 제공해주며 우리에겐 그러한 대안적인 세계관들이 필요하다. 한 언어의 소실은 곧 인간의 경험을 이해할 수 있는 한 가지 대안의 상실이다. 게다가 더 중요하게는 다른 언어와의 상호작용만이 우리 각자의 언어를 더욱 유연하고 창조적으로 만들어준다.[각주:4]

어제 기획재정부가 65세 고령인구 비율이 2050년에는 38.2%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이런 추세라면 훈민정음이 창시된 지 천 년도 채 되지 않아 한글이 사라질 수 있다. 보다 적극적인 인구정책과 함께 언어정책도 강구해야 함이 옳다.

언어정책은 자국어에 대단한 자부심을 가진 민족이 사는 프랑스에서 찾아볼 수 있다. 1994년 당시 문화부장관 쟈크 투봉이 제정한 Loi no 94-665 du 4 Août 1994 relative à l’emloi de la langue française, 혹은 간단히 투봉법이다. 정부간행물, 모든 광고, 직장 및 계약서에 불어 사용을 명령하고 방송에서는 일정부분 불어 노래를 내보내라는 내용을 골자로 한 자국어보호법이다. 국내에는 충무로 보호법이 시행되고 있는데(screen quota) 정부 차원에서 국어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

다시 국어원을 향해 고개를 돌려보자. 여기 행정기관 공공언어 진단을 위한 용역 입찰 공고가 있다.[각주:5] 행정기관의 외국어나 어려운 한자어 남용 실태를 조사하면 8천만원을 지불한단다. 조회수는 고작 40인데 내가 몇 번 눌렀으니 별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다. 보도자료도 내놓지 않은듯하다. 'G20 주최국'다운 품격 있는 국어 관리가 필요한 시점이다. 형님 예산을 챙기기 보단 국립국어원과 겨레말큰사전 사업에 지원금을 할당하길 바란다. 우리는 이런 정책을 들고 나오는 후보를 뽑아야 한다.

한류가 아무리 강렬한들, 동남아에서 한국어시험에 목숨을 걸고 달려들어도 정작 우리가 한글의 소중함을 외면하면 한글이 갖는 경쟁력을 상실한다. 언어 순수주의는 자국 보다 정치, 문화, 경제적으로 우월한 언어의 침범에서 태동한다. 우리는 문화적 자신감을 충분히 갖고 있는지, 새로운 언어 순수주의에 근접한 운동을 펼칠 수 있을지 한번쯤은 고민해봐야 하겠다.

  1. 대학생 10명 중 9명 “우리말 사용 어려워요” http://news.jkn.co.kr/article/news/20101008/5034469.htm [본문으로]
  2. <우리말이 바뀐다> ① 매년 수백개씩 생기는 신어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0/10/12/0200000000AKR20101012175100026.HTML [본문으로]
  3. 낯선 외국어를 순화한 『언론 외래어 순화 자료집』 발간(보도 자료) http://www.korean.go.kr/09_new/notice/notice_view.jsp?idx=155 [본문으로]
  4. 거꾸로 바벨탑 이야기 http://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23515.html [본문으로]
  5. 입찰재공고 - 행정기관 공공언어 진단 http://www.korean.go.kr/09_new/notice/notice_list.jsp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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