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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금: 구조의 문제 혹은 사고의 고착

Writings 2011.04.26 01:00

자본주의의 최고 미덕은 능력주의(meritocracy)에 의한 계급상승이다. 개인의 배경과 무관하게 제대로노력하면 인정을 받고 성공까지 얻을 수 있다는 전제를 바탕으로 오늘날 지배적인 경제체제로 자리매김했다. 지배계급은 이러한 구조를 유지하기 위해 시기 마다 대중에 내세울 상징적 인물들을 요구한다. 그러나 한때 상징성을 지녔던 재벌집단이 훑고 지나간 사회는 황량하다 못해 삭막하다. 다수의 국민은 그들이 펼치는 생존경기에 내밀린 개인에 불과하다. 그 와중에서 특히 슬픈 현실은 요즘 대학생들이 가장 처절하게 달리고 있다는 데 있다. 그들은 어째서, 무엇을 위해 그토록 한 가지 목적을 위해 젊음을 바치고 있는가?

최근 다양한 매체를 통해 대학생들의 이야기를 접하고 있다. 아마도 민주화 운동 이후에 학생집단이 이 정도의 관심을 받은 적이 있었나 싶다. 주제는 늘 한결 같다. 등록금이 과도하게 높고 경쟁이 단군 이래 가장 치열하여 취업하기 어렵다는 내용으로, 감정에 호소하는 부류도 있고 냉담하게 받아들이는 이들도 있다.

암흑의 심연으로 빠져드는 구조

문제는 능력주의의 폐단이다. ‘경쟁은 어떤 개인의 능력이 가장 우수한지 가리는 수단일 뿐이다. 구조의 문제는 여기에 있다. 조기교육이 낳은 악은 어린아이들에게 화합이 아닌 경쟁을 주입했다는 점이다. 실은 계급상승의 환상 보다 하락이라는 공포가 더욱 채찍을 들게 만들고 있지 않은가? 이로부터 파생된 현상을 진찰할 필요가 있다.

하소연을 늘어놓는 대학생들의 대부분은 구조를 바꿀 생각은 전혀 없고, 오직 부조리한 기득권층에 어떻게든 편입하고 싶어서 조바심을 내고 있다. 등록금 걱정 없이 학교를 다니는 학우들을 욕하지만 그들처럼 방학이 오면 연수를 가서 이력서를 화려하게 장식하고자 하며, 대기업에 취업하여 기득권의 일원이 되고자 하는 생각들로 가득하다. 그들은 입으로 기성세대가 경쟁을 미화하고 부추긴다고 욕하면서도 몸으로는 분주히 복마전에 뛰어들 준비를 하고 있다. 불만은 가득한데 대안을 찾기 보다는 앞만 향해 가려고 한다. 앞을 향해 가고자 한다면 장애물을 만났을 때 극복할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지금 상태로는 대규모 학생운동이 너무나 당연한 해답임에도 조직적인 시위를 하는 학생회는 보이지 않는다.

솔직히 말해보자. 과거처럼 목숨을 걸고 독재정권 타도를 외치자는 것도 아닌데 단결된 운동을 안 하는 이유는 마음속으로는 주변 경쟁자가 탈락하길 바라는 이기심 때문 아닌가? 남의 손을 더럽혀 공동의 이익을 확보하되, 그 사이에 본인은 그들을 앞서가고자 하는 옹졸한 사고가 아닌가?

정치과정이 답일까? 야권은 자중지란 보다 정체성의 상실이라는 총체적 위기에 봉착해 있다. 기존까지 진보나 좌파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분배 조차 우파에서 선택적 복지로 포장하여 가로챘으며, 중도까지 과감하게 영역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야권의 구호를 차례로 붕괴시켰다. 미국의 공화당, 이태리의 포르자 이탈리아 우파정당이 대표적인 사례다. 국민의 불만이 커질수록 오히려 우파가 득세할 가능성이 커지는 이유 중 하나는 외부요인으로 탓을 돌리고 민족주의를 자극하기 용이하기 때문이다. 기득권에 편입하고자 하는 청년층은 보수에서 들고 나오는 승부수에 그러니까 진부한 부의 축적과 신분상승이라는 선전 휘말리게 되어있다. 지금 대통령과 보수당을 뽑은 국민들을 보라. 선거가 현실개선에 요원한 이유다. 이런 사유로 구조 내에서 정치적 문제해결은 불가능하다. 정치의 틀 밖에서 급진적인 운동을 통해 일으킨 변혁을 정치 구조 내부로 내던져야 한다. 하루가 멀다고 축적되는 청년층의 좌절과 분노는 이런 경로로 사용하지 않으면 보다 깊은 실망감만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여태까지 기업 입장에서는 지원자들이 알아서 경쟁을 해준 덕에 채용이 용이했다. 그러나 요즘 대기업 인사담당자들이 대학교들이 학점에 관대하여 변별력이 떨어진다는 황당한 발언을 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교육기관이 기업의 인사평가를 위탁 받은 하청업체가 아니지 않은가? 지원자를 변별하는 행위는 기업의 책임이 아닌가? 자신들의 업무태만을 어찌 교육기관에 전가하려 드는가? 이는 오만방자한 태도다.

근데 대학들은 자신들의 신규채용, 즉 신입생 모집을 위해 학점을 남발하고 있다. 상위권 대학이 아니라면 취업이 잘된다는 사업설명서가 통하니까. 이 와중에 아쉬울 게 없는 상위권 대학은 등록금을 더 올린다. 대학재단의 투기 악순환은 골이 깊고, 교육을 위한 재투자는 부실하다. 누군가 당선을 목표로 반값 할인이라는 거짓 공약을 지킨다고 가정하자. 아니, 유럽처럼 국립대학은 아예 면제를 해준다고 하자. 우리가 당면한 구조 앞에서는 초유의 고학력자의 대량 실업으로 밖에 이어질 수 밖에 없다. 대학생들은 자신들이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이미 문제의 일부가 됐다. 통계청에 의하면 2011 3월 청년 실업률은 9.5%로 연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는 실정이다. 예비 실업자들이여, 40만 명 남짓한 청년층 무직자 공동체가 여러분을 환영할 것이다.

한국과학기술원(이하 과기원) 문제를 살펴보자. 교육개혁의 시행착오를 뼈저리게 보여주는 이 시대의 비극이 여기 벌어지고 있다. 그나마 과기원 재원이 불상사를 일으켰을 때 비로서 사회는 관심을 갖는다. 여기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 인권의 차등화가 그것이다. 여기서 나타난 현상은 비극으로, 사회구성원들 조차 사람의 귀천을 나누는 데 동조해버렸다. 심지어 젊은 검사가 죽어도 언론이 보도하지만 다른 여러 대학이나 고등학교 학생들의 자살은 아예 다뤄지지 않는다. '보라! 인재께서 타계하시면 세간이 주목한단다!' 반면 그 존재의 흔적 조차 남지 않는 소외된 이들은 인간의 자격에도 들지 못하나 보다.

두 번째는 능력주의에 편승한 편법적인 대학 순위 조작이다. 교육기관에 등급을 매기는 행위는 정당하다. 국가는 자국민 중 우수한 인재를 양성할 의무가 있으며 자국의 교육위상 제고라는 숭고한 목적을 달성할 권리가 있다. 그러나 오직 권위를 확보하기 위한 순위 조작은 옳지 못하다. 과기원을 비롯한 서울에 있는 모든 대학은 점수 올리기에 혈안이 돼있다. 채택한 방법론이 근본적 문제다. 숫자놀이로 전락한 몇 가지 예를 들면 교수의 논문발표 빈도, 외국어 강의 개수, 외국인 재학생 인구 따위의 숫자에 목매달고 있다. 서양교육체제를 채택했으면 기본부터 제대로 다졌어야 한다. 쉽게 풀이하자면 인위적으로 평가항목에서 높은 점수를 획득할 수 있는 요령만 짚어서 고른 성장이 아닌 기형적 외관 차리기에 몰두했다는 말이다. 저명한 학자들을 영입하여 학생을 가르치지 못할 망정 퇴직관료들을 몰래 불러들여 수업 한번 시키지 않고 임금을 지불하는 부조리한 현실에 기가 막힐 따름이다. 과기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편법으로 비약적인 약진을 실현했다. 얼마나 오래갈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서는 까닭은 강제된 제도가 선순환을 이루기 어렵기 때문이다.

여기 공약을 지키지 않은 정부가 하나 더 있다. 작년 5, 영국 자유민주당 대표 닉 클레그는 대학 등록금 인상을 하지 않겠다고 공약하였고, 다수당이 되지 못하자 보수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했다. 그러나 이들은 긴축재정을 이유로 2010 129 고등교육 지원금을 감축하고 기존에 3,290 파운드였던 등록금 상한제를 9,000 파운드로 올리는 법안을 표결에 부친다고 공표했다. 11 10일부터 본격적인 시위가 시작됐다. 법안 투표일인 12 9일까지 네 번의 시위가 일어났는데 영국 각지에서 모인 학생과 교수 등 매번 25,000~52,000명이 집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일 의회에서 법안은 통과됐다. 허나 민중의 분노는 식지 않아 3 26일에 노동조합회의 주최로 일어난 반정부 행진시위에 학생들을 포함한 영국인 40만 명(위에 언급한 한국의 청년층 실업자 수치와 대략 일치)이 참여했다. 여기서 끝난 게 아니다. 이들은 5 1(May Day)에 재차 집회를 갖기로 했다. 한편, 웨일즈 정부는 웨일즈 학생의 등록금 동결을 약속했고, 마찬가지로 스코틀랜드 정부는 스코틀랜드 학생들에게 계속해서 등록금 면제혜택을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한국의 대학생들과 교수들, 강사들은 숨죽이고 세태를 관망하고 있기만 할 것인가? 나는 오늘날의 대학생들에게 학교 밖으로 나와서 움직이라고 간청한다. 일부 학생회는 비정규직 인부들의 최저임금 달성이라는 작은 승리를 쟁취했다. 이 자신감을 가지고 보다 급진적인 운동을 펼쳐야 한다. 급진적 운동을 과격시위로 착각하지는 말길 바란다.

틀 안에서 개선은 단순하지만 어렵다. 정치인들이 조속히 재벌기업의 정규직 채용 확대 법안을 통과시키고 비정규직 연장을 철폐하면 큰 숫자를 흡수할 수 있다. 어려운 이유는 정경유착이라는 철의 장벽이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판을 다시 짜는 게 어떨까? 아이들 교육부터 다시 손봐야 한다. 경쟁과 취업만이 생존의 유일한 방법이 아니라는 사실을 가르치고 반드시 서울과 인근 위성도시에 집을 소유하고 차도 몰아야 한다는 구시대적 유물론으로부터 거리를 두자. 철학은 커녕 자기개발서 조차 제대로 읽히지 않는 문화를 개선하자. 이렇게 될 때까지 급진적인 운동의 불을 끄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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